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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두꺼비집’세대가 바라본 AI 시대의 에너지안전

투데이에너지
2026-06-08
[기고]  ‘두꺼비집’세대가 바라본 AI 시대의 에너지안전

김복태 ㈜한국전력기술 이사 /필자 제공

[투데이에너지]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기차, ESS(에너지저장장치), 태양광 산업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전력 사용량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AI 기반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소비하며, 냉각설비·전력변환장치·배터리 시스템 등 복잡한 에너지 인프라 위에서 운영된다. 이제 전기는 단순한 에너지를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을 움직이는 핵심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에너지안전’이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전력 소비 증가 전망. AI 가속 서버와 냉각 시스템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안정적인 에너지 인프라와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자료: IEA 기반 재구성) /필자 제공

필자가 처음 현장에 나갔던 1980년대만 해도 지금과 같은 누전차단기나 자동 차단 시스템이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이른바 ‘두꺼비집’이라 불리던 도자기 재질의 차단기를 사용하던 때도 있었고, 이후 플라스틱 기반 차단기와 마그네틱 스위치(자동 개폐 시스템), 누전차단기 등이 단계적으로 보급되면서 전기설비의 안전성이 크게 향상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노후 배선과 과부하 사용으로 인한 화재 위험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으며, 전기설비에 대한 안전 인식 역시 부족한 환경이었다.

과거 국내 가정집과 소규모 건물 등에서 널리 사용되던 ‘두꺼비집’ 형태의 도자기 재질 차단기와 초기 누전차단기를 재현한 이미지. 이후 자동 차단 및 누전 보호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내 전기안전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필자 제공

우리 사회는 여러 대형 화재 사고를 겪으며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다. 특히 1971년 12월 25일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 사고는 고층건물 화재와 건축물 안전관리 체계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크게 환기시킨 사건이었다. 당시 화재로 16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후 소방·건축·전기설비 안전기준 강화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또한 1999년 6월 30일 발생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역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 문제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무허가 증축, 부실한 전기설비 관리, 안전점검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지적되면서 시설 안전관리와 전기설비 점검 체계 강화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특히 전기 누전 가능성이 화재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며, 노후 전기설비와 임시 배선 관리의 중요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사고들을 거치며 전기설비 기술과 안전기준 역시 꾸준히 발전해왔다. 특히 누전차단기의 보급은 전기화재와 감전사고 예방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누전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함으로써 대형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위험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10월 15일 발생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다. 당시 배터리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주요 플랫폼 서비스가 장시간 중단되면서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의 안전성이 국가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AI·클라우드·데이터센터 산업이 확대될수록 대규모 전력설비와 ESS 운영 비중 역시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전력 공급을 넘어 열관리, 배터리 안전, 전력 품질, 예방 점검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안전관리 체계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 ESS 화재, 태양광 설비 안전관리 문제, 노후 공동주택 전기설비 과부하 문제 등 에너지 전환 시대에 따른 새로운 안전 이슈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 안전관리의 중심이 감전과 누전 예방이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센터·ESS·전기차·AI 인프라까지 고려한 고밀도 에너지안전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필자는 2019년, 신재생에너지 기반 수전해·연료전지 기술 개발과 관련된 아들의 회사 업무로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화학과(University of St Andrews School of Chemistry)와 관련 연구·기업 현장을 함께 둘러보며, 해외의 에너지 안전관리 체계와 예방 중심 운영 시스템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단순히 “설치”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설계·운전·점검·위험성 평가를 하나의 통합된 안전관리 체계로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영국은 'Electricity at Work Regulations 1989'를 통해 전기설비가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설치·유지·관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있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BS 7671(IET Wiring Regulations)에 따라 설계·시공·검사·유지관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또한 수소와 같은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은 HSE(Health and Safety Executive)를 중심으로 위험성 평가와 안전성 검증 절차를 매우 중요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특히 영국의 수소 혼입 실증사업인 ‘HyDeploy 프로젝트’는 실제 운영 이전에 기존 천연가스 수준의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고, 위험 분석과 안전성 평가를 선행한 뒤 실증을 진행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와 수소 기술이 확대될수록 단순한 기술 개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설계 단계부터 위험을 예측하고 운영 과정에서도 지속적인 점검과 예방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전기안전이 전기화재와 감전 예방 중심이었다면, 미래의 에너지안전은 수소·ESS·데이터센터·AI 인프라까지 포함한 통합 에너지 안전관리 체계로 확대되고 있음을 현장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작은 순서 하나를 지키지 않아도 스파크가 발생하고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무분별한 멀티탭 사용, 노후 배선 방치, 과부하 운전, 임의 시공과 같은 사소한 부주의가 결국 화재와 감전사고의 원인이 되곤 했다. 필자가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기본이었다.

“전기안전은 사고가 난 뒤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와 점검을 통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AI 시대일수록 더 많은 전력을 사용하게 되며, 결국 에너지안전은 미래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가 된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산업의 지속가능성 역시 유지될 수 없다.

전기는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에너지이지만, 안전은 그 에너지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첨단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결국 사람의 책임감과 점검 습관이다.

전기는 우리 삶의 필수 에너지이자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기반이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위험할 수 있다. 과거 에너지안전이 가정과 건물의 화재 예방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AI와 데이터센터, ESS, 전기차, 수소에너지 시스템까지 포함한 국가 에너지 인프라 전체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결국 안정적인 에너지 인프라에서 시작된다.

과거 ‘두꺼비집’ 세대가 감전과 화재를 막기 위해 기본을 지켜왔듯, 앞으로의 에너지안전 역시 AI·데이터센터·수소·ESS 시대의 새로운 위험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화려한 첨단 기술의 시대일수록, 현장에서 도면을 살피고 점검 순서를 지키는 사람들의 우직한 책임감이 미래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출처 : 투데이에너지(https://www.todayenerg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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