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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펌프는 준비됐다, 시장은 아직이다
히트펌프는 준비됐다, 시장은 아직이다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공식 에너지 지식 플랫폼 BUILD UP이 6월 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히트펌프는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기술로 부상했지만 경제적·구조적 장벽으로 인해 보급 확대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은 성장했지만 균열도 깊다
유럽히트펌프협회(EHPA) 통계에 따르면 유럽의 히트펌프 연간 판매량은 2005년부터 2024년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으며, 특히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그러나 2022년 정점 이후 판매량은 다소 감소했다. 보고서는 이를 시장 구조의 후퇴라기보다 경기 변동과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일시적 조정 국면으로 해석했다. 기술 주도 기종은 공기 대 물(air-to-water) 히트펌프로, 최근 몇 년간 가장 강한 성장세를 보이며 건물 전기화의 핵심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히트펌프의 경제성을 좌우한다
보고서는 가스 대비 전력 가격 비율을 히트펌프 시장 확대의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히트펌프는 소비 전력 1단위당 복수의 열에너지를 생산하는 고효율 시스템이지만, 전력 가격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가정용 소비자 입장에서 체감하는 경제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EU 회원국 간 전력·가스 가격 비율의 격차도 상당하다. 이는 탈탄소 난방으로의 전환 속도가 국가마다 크게 차이를 보이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리스의 경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공동연구센터(JRC) 자료 기준 2022년 약 4만 대가 판매됐고 총 설치 재고는 36만2,194대에 달했다. 그러나 주 난방 시스템으로 히트펌프를 사용하는 가구 비율은 0.6%에 그쳤다. 이는 설치 기반 확대가 반드시 실질적인 난방 전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유럽 신흥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AI가 다음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다
보고서가 가장 강조한 미래 동력은 인공지능(AI) 기반 제어와 디지털화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본질적으로 출력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시간적 불일치가 전력망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히트펌프는 운전 유연성이 높아 수요반응(DR) 메커니즘에 적합한 기술로 평가된다. 전력 소비를 실시간으로 조절해 계통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 히트펌프, 스마트그리드 간의 유기적 통신이 구현될 경우 히트펌프는 단순한 난방 장치를 넘어 전력망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에너지 인프라의 구성 요소로 진화하게 된다. 보고서는 AI 기반 최적화 기술과 디지털 트윈이 이러한 전환을 이끄는 핵심 도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개정 EPBD, 시장 전환의 분수령 될까
유럽이 개정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 이행을 본격화하면서 히트펌프는 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과 전기화 확대를 동시에 이끌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높은 초기 투자 비용, 숙련된 설치 인력 부족, 전력망 용량 제약이라는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보조금 지원, 세제 개편, 탄소가격제 강화 등 정책적 지원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기술 혁신만으로는 시장 전환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히트펌프가 유럽의 탈탄소 전략에서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성공 여부는 기술 자체보다 제도와 시장 환경이 얼마나 뒷받침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 용어설명
수요반응(DR, Demand Response) : 전력 수급 상황에 따라 전기 사용량을 조절해 전력망 안정성을 높이는 제도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 실제 설비나 건물, 전력망 등을 가상 공간에 동일하게 구현한 디지털 모델
EPBD(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s Directive) : 유럽연합(EU)의 건물에너지성능지침.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신축 및 기존 건물의 에너지 성능 기준을 규정하는 제도
BEMS(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 건물 내 냉난방·조명·환기 설비 등의 에너지 사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