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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이어 영국도 '소음 장벽'… 국내 히트펌프업계 긴장
영국 주택 외벽에 설치된 히트펌프 실외기와 방진 마운트. 유럽의 소음 규제 강화로 진동 차단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유럽 히트펌프 시장의 경쟁 기준이 냉매와 에너지효율 중심에서 소음·진동 관리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국이 최근 소음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진동 제어 기술이 새로운 수출 경쟁력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영국 현지 전문 매체에 따르면 업계에서는 컴프레서 진동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방진 설계가 향후 규정 준수는 물론 시장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의 진동 절연 및 지진 보호 기술 전문기업인 솔레코 엔지니어링(Soleco Engineering Srl)의 발레리아 베조 최고경영자(CEO)는 히트펌프 소음 규제가 한층 엄격해지는 가운데 컴프레서 진동 제어가 소음 민원 예방과 구조 전달 소음 저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5년 새 설치량 4.5배 급증… 강화된 규제에 소음 평가 의무화
영국 마이크로발전적합성인증(MCS) 기록에 따르면 2024년 히트펌프 인증 설치 건수는 5만8,000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5년에도 기존 건축물 개보수(retrofit) 시장을 중심으로 설치 수요가 확대되면서 설치량은 5년 전 대비 4.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정부가 보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며 연간 수십만 대 규모의 설치를 목표로 제시하면서 설치 업계의 규정 준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허가 기준이 개정되면서 보다 밀집된 주거 지역까지 히트펌프 설치가 가능해진 대신 소음 기준(MCS 020(a))은 한층 강화됐다. 이에 따라 모든 설치 현장은 사전에 정식 음향 평가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콘크리트·벽면 타고 전달되는 '숨은 진동'… 소음 문제의 핵심 원인
히트펌프 실외기 내부에 탑재된 컴프레서와 회전 부품은 운전 과정에서 지속적인 기계적 진동을 발생시킨다. 실외기가 콘크리트 바닥이나 테라스, 경량 프레임 또는 벽면 브래킷과 같은 견고한 구조물에 직접 설치될 경우 이러한 진동은 건물 구조체를 따라 실내로 전달된다.
솔레코 엔지니어링은 이 같은 '구조 전달 소음(structure-borne noise)'이 단순히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소음보다 훨씬 큰 불쾌감과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조 전달 소음은 설치가 완료된 이후에는 원인 파악과 개선이 쉽지 않아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히트펌프 보급 확대와 함께 소음 민원 역시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제품 성능뿐 아니라 설치 품질과 진동 관리 수준이 향후 시장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열가소성 엘라스토머 등 맞춤형 방진 부품 적용 필수
진동 전달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설치 단계에서 기기 본체와 지면 사이에 방진 마운트를 적용해 진동 에너지를 흡수·분산시키는 것이다. 주거용 히트펌프에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자외선 및 극한의 온도 변화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는 열가소성 엘라스토머(TPE) 기반 탄성 마운트가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경량 구조물이나 소음에 민감한 환경에서는 강풍에 대한 내구성을 확보한 특허 설계형 스프링 마운트가 추가적인 진동 차단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방진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장비의 중량과 운전 주파수 특성을 고려해 적정 하중 범위의 마운트를 선택하는 엔지니어링 설계가 필수적이다.
영국 현지 전문가들은 소음 규제가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면서 방진 설계를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닌 히트펌프 설치의 핵심 기본 공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소음 평가 통과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장기적인 기계적 스트레스로부터 건물 구조를 보호하고 장비 수명 연장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제품 규제' 넘어 '설치 생태계 규제'로
결국 소음 규제는 단순한 인증 요건을 넘어 제품 설계와 설치 기술 경쟁력을 가르는 새로운 진입장벽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업계에서는 유럽의 환경 규제가 냉매와 에너지효율 중심에서 소음·진동 관리 영역까지 확대되면서 관련 기준이 새로운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냉동공조업계 관계자는 "유럽 시장에서는 탄소 배출 저감과 냉매 전환에 이어 소음 기준까지 점차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향후 유럽 수출 제품은 에너지효율뿐 아니라 진동·소음 저감 성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냉매 전환과 효율 개선이 주요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진동과 소음 관리 기술도 중요한 제품 차별화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 개발과 부품 수요 역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규제 변화는 제품 자체의 성능만 평가하던 기존 환경 규제와 달리 설치 방식과 시공 품질까지 관리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설치 환경과 방진 설계 수준에 따라 소음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제조사뿐 아니라 설치업체, 부품업체까지 영향을 받는 새로운 규제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탄소배출과 에너지효율에 이어 소음과 진동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유럽 히트펌프 시장의 경쟁 기준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소음 규제가 제품 성능뿐 아니라 설치 품질까지 평가하는 새로운 시장 질서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방진 엔지니어링 역량 역시 선택이 아닌 필수 경쟁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용어 설명]
MCS (Microgeneration Certification Scheme): 영국의 신재생에너지 및 히트펌프 설치·제품 품질을 보증하는 국영 친환경 인증 제도
구조 전달 소음 (Structure-borne Noise): 실외기의 진동이 건물 벽면이나 콘크리트 바닥 등의 고체를 매개로 전달되어 실내에서 소음으로 변하는 현상
엘라스토머 마운트 (Elastomeric Mount): 고무와 유사한 탄성을 지닌 고분자 재료로 만든 진동 흡수 부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