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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공기업 ‘5사→1사’...에너지전환 시대, 대수술 시작되나
[에너지신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전공기업 구조개편 논의를 공식화하면서 국내 전력산업이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조직 개편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연구용역을 수행 중인 삼일회계법인이 발전 5사를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최적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전력업계와 노동계, 지역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8일 한전아트센터에서 ’에너지전환기 전력공기업들의 새로운 역할 연구‘ 중간보고회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현재 추진 중인 연구용역의 중간결과를 공개하고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발전공기업의 바람직한 구조와 역할을 논의하는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논의는 단순한 공기업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 석탄발전 퇴출, 전력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복합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력 거버넌스 재설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발전 5사가 통합할 경우 1사 체제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연구용역 결과가 공개됐다(사진은 AI 가 생성한 이미지).
●“경쟁보다 전환” 통합론 부상, 이유는?
발전 5사는 지난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한전의 발전부문이 분리되며 출범했다. 당시 목적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였으나, 25년이 지난 현재 전력산업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 수준으로 확대하고,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40기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확대와 해상풍력 개발 확대까지 맞물리면서 막대한 투자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삼일회계법인은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기존 발전 5사 체제가 에너지전환을 추진하기에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발전사들은 발전원은 물론 기획·구매·정비·연구개발 등 유사 기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개별 기업 단위 의사결정 체계로 인해 국가 차원의 최적화보다 회사별 최적화에 머물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 역량도 분산돼 있다는 것.
결국 ‘경쟁을 통한 효율’보다 ‘통합을 통한 전환 실행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판단이 이번 연구의 출발점이다.
●글로벌 전력사, 어떤 선택했나
삼일회계법인이 주목한 것은 해외 사례다.
덴마크의 오스테드(Ørsted)는 6개 에너지 회사를 통합한 뒤 화석연료 사업을 정리하고 재생에너지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일본 JERA는 도쿄전력과 중부전력의 화력사업을 통합해 세계 최대 LNG 구매력을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에 나섰다. 중국 국가에너지그룹(CHN Energy) 역시 석탄기업과 발전기업을 합병해 재생에너지 규모를 대폭 키웠다. 프랑스 EDF도 재생에너지 개발 기능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이들 사례를 통해 에너지 전환기에는 대규모 투자와 장기 프로젝트 수행 역량 확보가 핵심이며, 이를 위해서는 조직과 자본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게 이번 연구용역의 분석이다.

▲발전공기업 역할 재정립 연구용역 중간보고회가 진행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별도 전담기업 “오히려 위험”
주목되는 부분은 최근 일각에서 제기된 '재생에너지 전문 공기업' 설립론에 대한 반론이다. 연구용역에서는 재생에너지와 화력발전을 분리하는 모델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유니퍼(Uniper)와 RWE-이노지(Innogy) 사례가 제시됐다. 유니퍼는 화력발전과 에너지 트레이딩 부문만 떼어내 운영하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스 공급 중단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결국 독일 정부가 국유화했다. RWE 역시 화력과 재생에너지를 분리했지만 재생에너지 부문의 투자 여력이 부족해지면서 결국 재통합 수순을 밟았다.
특히 오스테드 사례도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오스테드는 재생에너지 기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뤘지만 최근 해상풍력 중심 투자에 따른 공급망 불안과 금리 상승 영향으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연구용역은 이를 단일 에너지원 집중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했다.
특히 발전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달리 수익뿐만 아니라 전력수급 안정과 계통 운영, 정책 수행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특정 전원 중심의 전문기업보다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통합의 또 다른 이유는 ‘정의로운 전환’
이번 연구용역에서 가장 강조된 개념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탈석탄 정책에 따라 향후 15년 안에 30기 이상의 석탄발전 설비가 폐쇄될 예정이다. 이는 수만 명의 노동자와 다수의 발전소 소재 지역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중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 감소와 지역경제 위축, 좌초자산 문제를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석탄발전을 운영해온 발전사가 바로 이러한 전환의 핵심 실행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공기업 인사제도상 서로 다른 공기업 간 인력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발전사가 각각 독립 법인으로 남을 경우 석탄발전소 폐쇄 이후 인력을 재생에너지나 신사업 분야로 재배치하는 데 구조적 한계가 발생한다.
반면 단일 통합법인이 되면 조직 내부에서 직무 전환과 인력 재배치가 가능해져 고용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이다.
●3개 대안 검토...권고안은 ‘1사 통합’
연구진은 발전사 개편의 원칙으로 △에너지 전환 실행력 확보 △리스크 저감 △운영 효율성 제고 △정의로운 전환 지원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검토한 대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발전 5사를 하나로 합치는 ‘완전 통합법인’ 모델이다. 둘째는 권역별 2~3개 회사로 재편하는 모델이다. 셋째는 통합 지주회사 아래 복수 자회사를 두는 방식이다.
평가 결과 세 가지 모델 모두 일정 부분 장점이 있지만, 연구진은 에너지전환 실행력과 투자 역량 측면에서 완전 통합법인이 가장 우수하다고 결론 내렸다.
권역별 분리 모델은 경쟁 체제를 유지할 수 있지만 투자 역량이 분산되고 정의로운 전환 추진력이 약화되는 문제가 지적됐다. 지주회사 모델은 절충안이 될 수 있으나 의사결정 이중화와 통제력 약화라는 한계가 부각됐다.

▲전문가, 노동계 등 이해관계자들이 연구용역 중간보고 결과를 두고 토론을 잔행하는 모습.
●“1사 통합, 만능은 아냐” 넘어야 할 산도
다만 연구진은 단일 법인 출범 시 공정경쟁 저해, 조직 비대화, 방만경영 가능성, 특정 지역·발전원 편중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인정했다.
특히 발전시장 점유율이 크게 높아지는 만큼 향후 전력시장 제도 개편 과정에서 민간 사업자와의 경쟁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노동조합 반발도 변수다. 발전 5사는 설립 이후 각기 다른 조직문화와 노사관계를 형성해 왔기 때문에 통합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여기에 발전소가 위치한 충남 보령·태안, 강원 삼척·고성 등 지역사회 역시 조직 개편에 따른 본사 기능 축소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7월 구조조정안 발표, 전력산업 재편 신호탄 될까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 중간보고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노동계,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 뒤 7월 중 발전공기업 기능 재편 및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향후 논의의 핵심은 통합 여부 자체보다 통합이 에너지 전환의 실행력을 높이는 동시에 경쟁과 효율성, 지역 균형발전, 노동자 보호를 어떻게 함께 달성할 수 있느냐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 전력산업의 미래 구조를 결정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