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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논단] 기후위기 시대, 발전용댐도 ‘국가 물안보 자산’이다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에너지신문] 기후위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사회기반시설(인프라)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고 있다. 댐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발전용댐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하는 것이 국가 발전의 핵심 과제였던 시절에 건설됐고, 그 목적에 맞춰 운영돼 왔다.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기후변화로 강수 양상이 급격히 뒤틀리고 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극심한 가뭄이 길어지고, 내릴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한쪽에서는 기습적인 집중호우와 도시 침수가 반복되는 와중에, 다른 쪽에서는 장기 가뭄과 공업용수 부족이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반도체, 인공지능(AI), 첨단 제조업 등 국가 전략산업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고품질의 용수를 요구하고 있다.
물은 이제 더 이상 환경 부문의 지엽적인 자원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 산업 경쟁력, 지역의 생존, 나아가 식량 안보와 에너지 체계까지 얽힌 국가 핵심 인프라다.
물의 부족은 생활의 불편을 넘어 산업 입지와 공급망을 마비시키고, 물의 과잉은 공동체의 안녕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는 곧 ‘국가 리스크 관리’와 동의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전용댐의 역할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발전용댐은 이름 그대로 전력 생산이 주 목적이다. 하지만 댐이 가진 방대한 저수 공간과 방류 능력은 전력 생산에만 갇혀 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자원이다.
홍수기에는 하류의 수해 위험을 낮추는 잠재적 조절 능력이 되고, 가뭄기에는 든든한 저수지가 돼 물 부족을 완화할 수 있다. 하천의 수질과 생태계, 하류 주민들의 용수 이용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의 발전용댐은 단순한 발전시설이 아니라, ‘국가 물안보 자산’으로 재정의돼야 마땅하다.
여기서 말하는 재정의는 특정 기관의 권한을 쪼개거나 합치자는 뜻이 아니다. 관리 주체를 둘러싼 부처 간 논쟁은 자칫 본질을 흐릴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관리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떤 원칙과 기준에 따라 운영할 것인가’이다.
과거에는 발전 효율, 용수 공급, 홍수 조절, 수질 관리가 비교적 독립된 정책 영역으로 다뤄졌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이 경계를 무너뜨렸다.
홍수를 막으려 수위를 미리 낮추면 가뭄 대비 저장량이 줄어들고, 발전 효율만 쫓다 보면 하류의 수질이나 생태유량과 충돌한다.
첨단 산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물을 가득 채워두면 정작 홍수기의 조절 여력이 고갈된다. 결국 문제는 단일 목적의 최적화가 아니라, ‘복수 목적 간의 정교한 조정’이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의 댐 운영은 발전, 치수, 이수(利水), 수질, 생태, 그리고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통합적 의사결정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개별 시설 중심의 분절된 운영을 넘어, 유역 단위의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다. 기상 예측 데이터부터 저수율, 하류의 위험도, 산업단지의 수요, 생태유량 등을 실시간으로 종합 판단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발전용댐을 물안보 자산으로 취급할 때 나타나는 실질적인 변화다.
물론 물안보 자산으로 재정의된다고 해서 발전 기능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수력발전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계통 안정성 측면에서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공익적 역할을 한다.
다만 발전 기능이 다른 공공의 이익과 충돌할 때, 어떤 우선순위와 기준으로 조정할 것인지, 그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투명하게 구축할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세 가지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발전용댐의 물안보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각 댐이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 등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유역의 조건, 저수 용량, 하류의 인구와 산업 수요에 따라 댐마다 최적의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둘째, 운영 규칙을 기후변화 현실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과거의 강수 패턴과 수요를 전제로 만든 낡은 매뉴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극한의 기후 변동성을 반영해 홍수기 제한수위, 가뭄 단계별 방류 기준, 비상시 용수 배분 원칙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셋째, 의사결정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댐 운영은 기술적 영역을 넘어 상‧하류 주민, 도시와 농촌, 산업계와 환경 단체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공공의 영역이다.
정부, 지자체, 전문가,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투명한 구조 속에서 기준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는 ‘댐을 더 지을 것인가’라는 1차원적 질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미 존재하는 물 저장 능력을 어떻게 공공의 안전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재구성할 것인가’이다.
댐은 이제 하나의 목적만을 수행하는 단독 시설이 아니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전력과 물, 안전과 산업, 그리고 생태를 잇는 최후의 '복합 보루'가 된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수자원 인프라의 공적 책무를 묻고 있다. 이제 국가 물안보라는 대의 안에서 댐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