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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대영 휴마스터 대표
이대영 휴마스터 대표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한여름 실내 온도가 27℃ 아래로 유지된다. 그런데 습도는 80%를 넘나든다. 국내 대표적인 패시브·제로에너지 하우스인 '람다하우스'에서 실제로 관찰된 현상이다. 에너지는 절약했지만, 그 안은 장마철 한가운데와 다를 바 없었다.
정부는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ZEB(Zero Energy Building·제로에너지 건축) 인증을 의무화하고 있다. 연면적 1000㎡ 이상 공공건축물을 시작으로 2025년 500㎡ 이상 공공건축물과 1000㎡ 이상 민간건축물로 확대됐고, 2030년에는 500㎡ 이상 모든 건축물로 전면 확대된다. 패시브 공법으로 단열·기밀·창호 성능을 극대화해 냉난방 부하를 최소화하고,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로 나머지 소요량을 충당한다는 것이 ZEB의 골자다. 탄소중립을 향한 건축 패러다임의 핵심 수단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러나 정작 ZEB 건물 안에서는 곰팡이와 고습도를 호소하는 민원이 늘고 있다. 에너지 성능 향상이라는 본래 목적과 달리, 그 안에 사는 사람의 건강과 쾌적함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는 업계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공론화되고 있다. 성민기 세종대 교수(대한설비공학회 환기전문위원장)는 최근 학술지 기고를 통해 현장 곳곳에서 같은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서울 소재 공공건물 현장 실증 연구에서도 기존 냉각 시스템이 장마철 저온 다습 조건에서 실내 쾌적성을 전혀 유지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확인된 바 있다. 이대영 ㈜휴마스터 대표이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온도와 습도를 분리해 제어하는 습도 컨디셔닝 없이는 진정한 탄소중립도, 건강한 주거 환경도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운영 미숙이 아니라 구조적 한계"
이 대표가 ZEB의 습도 문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람다하우스의 실증 데이터였다. 그는 "한여름에 강화된 단열 성능 덕분에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실내 온도는 27℃ 이하로 잘 유지됐지만, 습도는 무려 80%를 상회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관찰됐다"며 "유럽에서 정립된 ZEB 기술이 우리나라의 고온다습한 기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단순 이식되면서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인식은 아직 더디다. 그는 "현장의 거주자나 관리자들은 극심한 불편을 겪으며 민원을 제기하고 있지만, 설계나 시공 등 공급자 측면의 업계에서는 여전히 이를 운영 미숙이나 일시적인 장마철 현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문제는 일부 건물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형 ZEB가 가진 구조적인 한계이자 공통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보온병이 된 건물
원인은 ZEB의 핵심 기술인 고단열·고기밀 구조 자체에 있다. 이 대표는 이를 '밀폐용기형 보온병'에 비유했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두면 밖이 아무리 추워도 온도가 유지되듯, ZEB는 외부의 열 침입을 완벽히 차단한다. 온도를 지키는 데는 최고이지만 문제는 습기다." 사람이 호흡하고, 요리하고, 샤워하면서 나오는 생활 습기가 과거의 일반 건물에서는 미세한 틈새를 통해 자연스럽게 빠져나갔지만, 꽉 막힌 ZEB 내부에서는 이 습기가 갇혀 적체되며 습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ZEB의 필수 설비인 열회수 환기장치도 근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이 장치는 실내외 온기 교환을 억제하는 현열교환 기능과 습기 교환을 억제하는 잠열교환 기능으로 냉난방 에너지 손실을 줄인다. 그런데 이 기술이 시작된 유럽은 여름이 건조해 습기 제어가 중요하지 않았던 탓에, 온도를 지키는 데만 특화돼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제품들도 물 분자가 소재를 통과하는 저항이 워낙 커서 현열교환 효율은 80~90%에 달하는 반면, 잠열교환 효율은 30% 미만인 경우가 허다하다"며 "환기를 할수록 실내를 가습하는 꼴이 되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는 입주자의 직접적인 불편으로 이어진다. 이 대표가 꼽은 가장 흔한 민원은 냉방 딜레마다. "에어컨을 25℃로 켜면 너무 끈적이고 덥고, 20℃로 낮추면 제습은 되는데 추워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 건물은 에어컨이 찬 공기를 공급해도 외부 열 유입으로 온도가 다시 올라가면서 상대습도가 떨어지지만, 단열이 잘 된 ZEB는 온도가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 그 결과 온도는 적절한데 습도만 높은 장마철 같은 상태가 되거나, 습도를 잡으려고 에어컨을 무리하게 가동하다 실내가 과도하게 추워지는 냉방병으로 이어진다.
기준조차 없다
문제는 기술뿐 아니라 평가 기준에도 있다. 이 대표는 현행 에어컨 기술 기준(KS C 9306)이 "온도를 낮추는 능력에만 치우쳐 있고, 습기를 제거하는 능력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습기를 잡으려고 에어컨을 불필요하게 낮은 온도로 가동하면서, 서류상 고효율 제품이 실제로는 매우 낮은 효율 조건에서 운전되는 운영 효율의 심각한 저하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열회수 환기장치 기준(KS B 6879) 역시 겨울철 난방 절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온도 교환 효율이 높으면, 정작 여름철에 가장 중요한 습기 차단 효율이 매우 낮아도 전체 기준을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구조"라며 "이 기준을 통과한 제품을 한여름 ZEB에 틀면 외부의 축축한 습기가 그대로 들이쳐 환기를 할수록 실내가 가습되는 환경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온도와 습도, 따로 잡아야
해법의 방향은 명확하다. 온도와 습도를 분리해 제어하는 기술이다. 이 대표는 "냉각제습 후 버려지는 실외기 폐열을 이용해 차가워진 공기를 살짝 데워 내보내는 재열 시스템은 에너지 추가 소비 없이 온습도를 맞출 수 있어 일부 상업용 시스템에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안으로는 제습제로 공기 중 수분을 직접 흡수하는 데시컨트 제습 기술을 꼽았다. 온도와 무관하게 습기만 독립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 ZEB의 부하 특성에 가장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환기 분야에서는 회전형 전열교환기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 대표는 "기술적 성숙도는 충분하지만 현 제품 기준에서 잠열교환 효율의 비중이 매우 낮다 보니, 건설사 입장에서는 단가가 저렴하면서 서류상 기준만 맞출 수 있는 일반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고 지적하며 "고성능 제품을 적용했을 때의 에너지 절감과 공기질 개선 효과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줘야 보급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미 운영 중인 건물에서는 당장 실천 가능한 방법도 있다. 이 대표는 낮 동안 외기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한낮의 환기가 오히려 실내를 가습하는 역효과를 낳기 때문에, 기온과 절대습도가 낮아지는 야간이나 새벽 시간에 환기장치를 집중 가동하는 '하절기 야간 환기'를 권했다. 다만 그는 "근래 들어 열대야 일수가 증가하면서 야간 환기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므로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환기장치 소자 교체나 온습도 독립 제어 설비 추가 등 개보수를 점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변화의 단초는 이미 마련되고 있다. 이 대표는 "실내 고습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학계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며 "관련 학회가 수년간 전문 위원회와 공청회를 거쳐 ZEB 환경에 최적화된 HVAC 성능 기준을 가까운 시일 내 제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패시브와 액티브, 균형이 진짜 ZEB"
이 대표는 기준 정비가 지연될 경우의 위험성도 분명히 했다.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은 채 2030년 전면 의무화가 시행된다면, ZEB는 원래 눅눅하고 살기 불편한 건물이라는 대중적 불신이 쌓이고 국가적인 탄소중립 건축 로드맵의 실행 동력 자체가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ZEB의 조건은 분명하다. "에너지를 줄이면서도 인간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실내환경을 제공하는 건물이다. 건축물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데 있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건강과 삶의 질을 희생해야 한다면 지속가능한 건축모델이 되기 어렵다." 그는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으로 '패시브와 액티브의 균형'을 꼽았다. "그동안 국내 ZEB는 단열재나 고성능 창호 같은 패시브 요소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보온병처럼 밀폐된 내부 공기환경을 제어하는 HVAC 설비 같은 액티브 요소는 경시돼 왔다"며 "꽉 막힌 구조를 만들었다면 그에 걸맞게 실내환경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공조 시스템이 반드시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기후에서 사람과 지구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ZEB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2030년 ZEB 전면 의무화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단열재와 창호 두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숙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람다하우스의 80% 습도계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용어 설명]
ZEB (Zero Energy Building·제로에너지 건축) :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나머지를 충당해 에너지 소비 순합계를 '0'에 가깝게 만드는 건축물.
람다하우스(Λ-house) : 세종시에 위치한 국내 대표적인 패시브하우스 실증 주택.
패시브(Passive) 공법 : 기계 설비에 의존하지 않고 건물 자체의 단열·기밀·창호·열교 차단 성능을 높여 냉난방 에너지 부하를 줄이는 건축 기법.
액티브(Active) 시스템 : 태양광·지열 등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거나 고효율 냉난방·환기 설비를 통해 에너지를 능동적으로 생산·관리하는 시스템.
현열(顯熱·Sensible Heat) : 온도계로 측정할 수 있는 열.
잠열(潛熱·Latent Heat) : 온도 변화 없이 상태 변화(기화·응결 등)에 사용되는 열.
현열비(SHR·Sensible Heat Ratio) : 전체 냉방 부하(현열+잠열) 중 현열이 차지하는 비율.
열회수 환기장치(전열교환기) : 실내 공기를 환기할 때 버려지는 실내 온기(현열)와 습기(잠열)를 회수해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장치.
데시컨트(Desiccant) 제습 : 실리카겔 같은 제습제(흡습 소재)를 이용해 공기 중 수분을 직접 흡수·제거하는 방식.
KS C 9306 : 국내 에어컨 기술 기준(한국산업표준).
KS B 6879 : 국내 열회수 환기장치 기술 기준(한국산업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