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업계뉴스
[에너지 인사이트] 위기 직면한 철강, 생존 위한 구조재편 시동
제철소 이미지 / 픽사베이
[투데이에너지 장재진 주필] 철강은 자동차, 조선, 건설, 가전 등 국내 제조업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간산업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철강산업은 전례 없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하며, 그 생존과 미래 경쟁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정부가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며 산업 구조 재편의 시동을 걸었다.
철강업계와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철강산업을 옥죄는 위기의 징후는 크게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범용재 경쟁력 약화,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와 통상 압력, ▲탄소중립 시대, 환경 규제 강화와 저탄소 전환 요구로 요약된다.
글로벌 경제의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철강 생산 능력은 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범용 철강 제품은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중국, 인도 등 후발 주자들과의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곧 우리 철강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직결된다.
미국이 50% 관세를 부과하고, 유럽연합(EU)이 세이프가드 조치로 TRQ(할당관세율 쿼터) 전환을 제안하는 등 주요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수출 중심인 우리 철강산업에는 거대한 수출 장벽으로 작용하며 해외 시장 진출에 큰 어려움을 안기고 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움직임은 철강산업에도 막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고로 중심의 현 생산 방식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저탄소 공정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지만, 이는 막대한 기술 개발 투자와 자금 확보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한국 철강산업은 단순히 현상 유지로는 버틸 수 없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정부가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게 된 배경에는 현재의 위기를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더 이상 범용재 경쟁력만으로는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명제는 이번 방안의 핵심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안은 단기적인 부양책이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의 구조적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며 ▲지속가능한 성장 궤도에 안착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철강업계의 자율적인 컨설팅, 민관 합동 TF 운영, 그리고 광범위한 업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마련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즉, 정부 주도 일방향이 아니라, 민간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협력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정부의 이번 고도화 방안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첫째, 설비 조정이다. 공급 과잉 품목에 대한 선제적인 설비 규모 조정은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필수적이다. 특히, '기업활력법'이나 나아가 '철강특별법'까지 검토하는 등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가 엿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 경제 및 고용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연착륙'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둘째, 통상 대응 강화다. 미국의 관세, EU의 세이프가드 등 날로 복잡해지는 통상 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철강산업에 매우 중요하다. '철강 수출공급망 강화 보증상품'과 같은 정책금융 지원 확대와 '품질검사증명서 의무화'를 통한 불공정 수입재 단속 강화는 대외 환경 변화에 대한 산업의 방어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미래 투자 가속화이다. 고부가 특수탄소강 시장 선점을 위한 2천억 원 규모의 R&D 지원과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은 우리 철강산업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친환경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철강산업의 AI 전환을 통해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비전도 인상적이다. 막대한 투자 재원 확보와 기술 개발 성공 여부가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 상생협력 강화다. 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한 지역 경제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등 지역경제 지원책과, 철강-원료-수요산업 간의 협력 강화는 산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안전 관리 강화 또한 중요한 부분으로, AI 기반의 사전 예방 시스템 구축을 통해 중대재해 없는 안전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은 한국 철강산업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에 대한 정부의 강력하고 다각적인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이다. 단순한 규제나 지원을 넘어, 미래 기술과 시장 환경 변화에 발맞춰 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대규모 산업 구조 재편은 많은 난관과 도전 과제를 동반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민관이 긴밀히 협력하며, 예측 가능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면, 위기는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