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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마당] 중동 전쟁이 지운 기후 의제 재설계하다
송고일 : 2026-04-24
▲ 이상협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에너지신문] 2026년 봄, 세계의 시선은 중동에 고정돼 있다.
올해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 공습으로 촉발된 전쟁은 에너지 가격 급등, 공급망 마비, 지정학적 분열이라는 '트리플 쇼크'를 국제사회에 던졌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강행함에 따라 전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1%, LNG(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의 25%가 즉각 차단됐으며, 브렌트유는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며 3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있어 이번 전쟁은 단순한 경제적 충격을 넘어 국가 생존의 문제다.
한국은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이자 3위의 LNG 수입국으로, 중동 원유 의존도는 62%에 달한다. 수입 원유의 약 71%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해야 하는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해협 봉쇄는 국내 제조 및 물류 산업 전반의 가동률 저하로 이어진다.
정부는 즉각 비축유 9000만배럴을 방출하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긴급 수정을 통해 석탄화력발전소 가동률을 평시대비 15% 상향하는 고육책을 내놨다.
2023년 두바이 COP28에서 합의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은 불과 2년만에 에너지 안보라는 명분 앞에 무력해졌으며, 기후변화 대응은 다시금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지구의 기상과 기후는 인간의 전쟁을 위해 단 하루도 멈추지 않는다. 이 혼돈의 시대에도 인류는 두 개의 강렬한 기술적 흐름과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혁신을 선도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다. 2025년 이후 기상 예측 전용 거대언어모델(LLM)이 현장에 도입되면서 예보 정확도는 92%를 넘어섰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AI 기반 국지성 호우 예보 시스템은 과거 대비 골든타임을 평균 35분 이상 추가 확보하며 홍수 피해액을 전년대비 12% 절감하는 성과를 냈다.
여기서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의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1850년 산업혁명 이후 탄소 농도 그래프가 유의미하게 꺾였던 시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뿐이었다.
이는 인류의 자발적 노력이 아닌 외부 충격에 의한 ‘강제적 위축’의 산물이었다. 지금의 이란 전쟁 역시 HI가 기후문제를 얼마나 쉽게 외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AI는 위기 상황에서 최적의 ‘수치’를 제시할 뿐, 가치 기반의 ‘선택’을 내릴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감상적인 호소를 넘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기술적·정책적 실행 전략으로 기후 의제를 안보 체계에 편입시켜야 한다.
첫째, ‘저전력 고효율 그린 AI’ 기술의 표준화다. 연산 능력을 극대화하면서도 전력 소모를 40% 이상 감축할 수 있는 ‘저전력 반도체(PIM)’와 ‘알고리즘 경량화’ 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 지표인 PUE(Power Usage Effectiveness)를 1.1 이하로 낮추기 위한 액침 냉각(Immersion Cooling) 기술의 의무 도입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둘째, 무탄소 에너지(CFE) 중심의 에너지믹스 재설계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소형모듈원전(SMR), 수소터빈 등 모든 무탄소 전원을 에너지 안보망에 통합해야 한다.
특히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수소·암모니아 혼소 발전 비중을 현재의 시범 운영 수준에서 상업 운영 단계로 조속히 격상시켜야 한다.
셋째, 기후 기술 기반의 ‘글로벌 공급망 복원력’ 강화다. 중동발 에너지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해 핵심광물 및 에너지 도입선을 북미, 호주 등으로 다변화하고, 해외 탄소포집·저장(CCS) 프로젝트를 통한 국가 간 협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 협력을 넘어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기후-경제 안보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 현장의 자율성과 ESG 가치의 조화다. 연구자들에게 탄소중립은 창의성을 제한하는 규제가 아닌 ‘새로운 기술적 난제에 대한 도전’이 돼야 한다.
연구실 단계에서부터 전생애주기 평가(LCA)를 도입, 기술 개발의 시작점이 탄소저감과 맞닿아 있도록 장려하는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이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탄소 시계의 초침은 멈추지 않는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윤리적 선택이 아닌 지정학적 생존 전략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AI가 제시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복원력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HI의 결단만이 포화에 지워진 기후 의제를 역사의 전면에 다시 세울 수 있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