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업계뉴스
AI·중동·E전환 ‘삼중고’...“에너지안보 패러다임 바꿔야”
[에너지신문] 중동 정세 불안과 인공지능(AI) 확산, 에너지 전환 가속화가 맞물리면서 한국의 에너지안보 전략도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과거처럼 원유 확보에만 초점을 맞춘 에너지안보 개념에서 벗어나 전력망, 핵심광물, 공급망 회복력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17일 열린 에너지경제연구원 정책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최근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단순한 에너지 가격 변동 수준을 넘어 국가 경제와 산업 경쟁력 전반을 좌우하는 구조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세미나 주제는 ‘지정학 리스크 시대의 에너지 안보와 대전환: 안보 위기를 넘어 전환 가속의 기회로’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정책세미나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변수는 중동발 공급망 리스크다. 한국은 원유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원유 도입의 70% 이상이 중동에 집중돼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급감하면서 중동 의존도가 다시 높아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석유안보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고 있지만 수송용 연료와 석유화학 원료 수요는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신규 유전 개발은 감소하고 있어 공급 측면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이 발생해 에너지 전환 정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영국은 에너지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을 연기했고, 주요국들은 유가 급등기에 유류세 인하와 보조금 확대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 체계 강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 산유국 등으로 수입선을 확대하고, 기존의 단순 비축 중심 정책에서 실제 위기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비축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유산업을 단순 제조업이 아닌 국가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안보의 중심축이 전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로 꼽혔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산업 전기화 확산으로 글로벌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특히 AI 서비스 확대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2030년에는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전력 수요의 3~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전력 수요 증가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의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40년 전력 소비는 현재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전력 수요와 공급의 지역적 불균형이다. 전력 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반면 발전설비는 비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송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주민 수용성 문제로 주요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면서 계통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도 새로운 과제를 낳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탄소중립 달성에 필수적이지만 출력 변동성이 크고 계통 안정성 확보를 위한 추가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ESS와 양수발전, 전력계통 안정화 설비 확대, 실시간 전력시장 구축 등이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정책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 패권 경쟁 역시 새로운 변수다.
현재 미국은 석유와 가스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석유 못지않게 리튬, 니켈, 희토류 등 핵심광물 확보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에너지안보는 단순히 에너지를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공급망 회복력과 전력망 안정성, 핵심광물 확보 능력까지 포함하는 종합 전략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에너지안보가 석유 수입 안정성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전력망, 데이터센터, 핵심광물, 사이버 보안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 능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