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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가 만든 ‘열의 시대’
AI 데이터센터가 만든 ‘열의 시대’ / AI 생성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이 전 세계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이 AI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한 가운데 최근에는 또 다른 에너지 이슈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열(Heat)’이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히트펌프, AI 시대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열에너지 전환기술(기계기술정책 제124호)’ 보고서에서 히트펌프를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 핵심 열에너지 전환 기술로 제시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폐열을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미래 산업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탄소중립 시대의 새로운 과제
지금까지 에너지 정책은 전기를 얼마나 생산하고 확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탄소중립이 글로벌 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에너지 생산 못지않게 사용 과정에서 버려지는 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계연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히트펌프가 있다고 진단한다. 히트펌프는 주변의 낮은 온도 열원을 회수해 더 높은 온도의 열로 전환하는 장치다. 냉장고나 에어컨의 원리를 응용한 기술이지만 최근에는 건물 냉난방을 넘어 산업 공정, 지역난방, 데이터센터 폐열 활용 등으로 적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전기화(Electrification)와 탄소중립이 산업 전반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화석연료 기반 보일러를 대체할 차세대 열에너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AI가 키우는 데이터센터, 함께 늘어나는 폐열
보고서가 데이터센터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약 415TWh에서 2030년 945TWh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AI가 이러한 증가세를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력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열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서버가 소비하는 전력의 대부분은 결국 열로 전환된다. 데이터센터 운영자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냉각 설비를 가동하지만, 이렇게 발생한 열은 대부분 외부로 버려진다.
기계연은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전력 소비 시설이 아닌 ‘상시 대용량 폐열 생산 시설’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AI 산업이 성장할수록 데이터센터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공급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버려지던 열, 에너지 자원이 되다
과거에는 데이터센터 폐열의 활용 가치가 제한적이었다. 대부분 공랭식 냉각 시스템을 사용해 회수 가능한 열의 온도가 낮고 효율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고성능 AI 반도체가 보편화되면서 직접액체냉각(Direct-to-Chip)과 침지냉각(Immersion Cooling) 같은 차세대 냉각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액체냉각 기술은 기존 공랭식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의 폐열을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어 히트펌프의 활용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여기에 고온 히트펌프 기술이 결합되면 데이터센터 폐열을 지역난방이나 산업용 열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 과거에는 버려졌던 열이 도시 난방과 산업 생산에 활용되는 에너지 자산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유럽은 이미 도시 인프라로 활용
유럽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실증 단계를 넘어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Microsoft는 핀란드에서 에너지 기업 Fortum과 협력해 데이터센터 폐열을 대규모 지역난방망에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Meta는 덴마크 오덴세 데이터센터에서 회수한 폐열을 지역난방에 활용하고 있으며, Amazon 역시 아일랜드 탈라 지역에서 데이터센터 폐열을 활용한 난방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사례는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IT 인프라가 아니라 도시 에너지 인프라의 일부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AI가 만들어낸 전력 소비 문제를 열에너지 활용을 통해 해결하려는 새로운 접근이다.
한국은 아직 추격 단계
반면 국내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국IDC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5년 4461MW에서 2028년 6175MW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전력에 전력 공급을 신청한 신규 데이터센터 규모 역시 현재 운영 중인 시설의 수 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데이터센터 폐열을 지역난방과 연계하는 대규모 상용화 모델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일부 실증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나 유럽처럼 도시 단위 에너지 인프라로 확장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도 과제가 남아 있다. 유럽과 일본의 선도 기업들은 이미 165~240℃급 초고온 산업용 스팀 히트펌프를 상용화하고 있는 반면 국내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 영역의 기술 개발과 실증에 집중하고 있다. 보고서는 데이터센터 폐열 활용 확대를 위해 고온 히트펌프 기술 확보와 국산화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기의 시대’에서 ‘열의 시대’로
기계연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히트펌프 기술 소개에 머물지 않는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생산된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순환시키느냐가 새로운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특히 데이터센터에서 버려지던 폐열을 난방과 산업 공정에 활용할 수 있다면 데이터센터는 전력 소비 시설을 넘어 에너지 공급 거점으로 진화할 수 있다. 탄소중립과 AI라는 두 거대한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히트펌프가 미래 에너지 산업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 이유다.
기계연은 앞으로 데이터센터 폐열 활용, 자연냉매 전환, 디지털 기반 에너지 최적화 기술이 히트펌프 산업의 새로운 성장 축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AI가 만들어낸 막대한 열을 비용이 아닌 자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탄소중립 시대 열에너지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