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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쓰기→옮겨 쓰기'...전력소비 패러다임 바뀐다
[에너지신문] 정부의 전력수요 관리 정책이 '적게 쓰는 것'에서 '필요한 시간에 쓰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계통 운영 방식 변화에 맞춰 소비자의 전기사용 시간을 조정하는 '수요 유연성(Demand Flexibility)' 확보가 새로운 정책 목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7월부터 본격 시행하는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전기를 절약하면 캐시백을 지급하는 기존 제도를 확대하는 동시에,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주말 낮 시간대로 전력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전력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수요관리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 에너지캐시백 제도 개편 내용.
■적게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 전력수급 정책은 여름철이나 겨울철 피크 시간대 소비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으나,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광 발전이 급증하면서 봄과 가을, 특히 주말 낮 시간에는 전력이 남아도는 반면, 해가 지는 저녁 시간에는 태양광 출력이 급격히 감소해 다시 공급 부족이 발생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른바 '덕커브(Duck Curve)'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정부가 이번 정책에서 '전력을 낮에 쓰면 혜택을 준다'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러한 계통 여건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캐시백도 대폭 확대...피크 절감에는 최대 500원/kWh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주택용 에너지캐시백 제도다. 기존에는 직전 2년 평균 대비 3% 이상 절감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1%만 절약해도 캐시백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지급 단가 역시 최대 120원/kWh까지 높였다.
여기에 여름철 최대전력수요 시간인 평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사용량을 줄이면 1kWh당 500원의 추가 캐시백도 시범 운영한다. 이는 단순 절약보다 전력망 부담을 줄이는 시간대별 절감에 훨씬 높은 보상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낮시간 소비 늘리는 첫 실험
반대로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소비를 늘리는 정책도 함께 추진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가전 캐시백'이다.
9~10월 주말과 공휴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의류관리기 등 스마트가전을 사용하면 사용 전력량에 따라 캐시백을 지급한다. 전기차 충전 역시 같은 시간대 충전요금을 할인한다.
이는 그동안 공급 중심으로 운영되던 전력계통을 소비자가 함께 조정하는 '플렉슈머(Flexumer)' 체계로 전환하려는 첫 시도로 평가된다.
■산업계도 시간대별 요금 차등 확대
정책 변화는 가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산업용(을) 고객을 대상으로는 9~10월 주말과 공휴일 낮 시간 전력량 요금을 50% 할인하는 제도도 시행된다. 기업들이 생산 공정이나 전력 사용 시간을 조정할 경우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력 다소비 업종에서는 이미 계시별 요금제를 활용한 운영 전략이 중요한 경영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이번 정책은 산업계 수요관리 확대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AI가 생성한 에너지캐시백 이미지.
■플랫폼 하나로 통합...참여율이 관건
정부는 흩어져 있던 39개 전력 서비스를 '슬기로운 전기생활' 플랫폼으로 통합했다. 에너지캐시백, 전기요금 복지할인, 에너지바우처, 플러스DR, 전기요금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한 곳에서 신청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다.
다만 실제 성과는 소비자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름철 피크 캐시백은 AMI(지능형 원격검침계량기)가 설치된 가구만 참여할 수 있고, 스마트가전 캐시백 역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 플랫폼 연동이 필요하다.
전기차 할인도 일부 충전사업자에 한정되는 만큼 소비자가 제도를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향후 과제가 될 전망이다.
■ "수요 유연성 시장의 시작"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계통으로 전환하기 위한 수요관리 정책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지금까지는 발전소를 더 짓거나 송전망을 확충하는 공급 중심 접근이 전력정책의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가 전기사용 시간을 조정해 계통 안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도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AMI 보급 확대와 스마트가전·전기차 등 디지털 인프라 확산은 물론,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지속적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것.
향후 가정용 ESS, 가상발전소(VPP), AI 기반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이 더욱 확산될 경우, 소비자가 전력시장의 새로운 주체인 '플렉슈머(Flexumer)'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